영혼이 있는한 무신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 그 자체가 곧 신이며 종교이기에 ... 그 종교의 정점 뿌리에는 우주체 월일 천리왕명의 오묘한 섭리가 있을 뿐이며 존재하는 그 어떤 신을 믿더래도 최종결정권자는 우주신일 뿐 그 외에는 전부가 사람죽은 귀신 즉 인격신 뿐이다.
천리교창조문답

     
 
.......작성자 무라키미 카즈오 ()
.......제 목 신앙으로 보는 과학/2대 신바시라의 어버이마음
.......등록일 2004/10/5 (8:6) 조회 1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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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신바시라(眞柱)의 어버이마음 넘치는 가르침

用材(오야사마의 사명을 다하는 심부름꾼)과학자
무라카미 카즈오(村上和雄 ·쓰쿠바 대학 명예교수 : 세계 최초로 인간 몸속에 있는 레닌의 모든 유전자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
  

‘초심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있다. 기술이든 예술이든 그 길에 뜻을 둔 최초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길의 신앙에서도 물론, 항상 오야사마의 모본에 비추어 돌이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조 연제의 시순의 한가운데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용재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신앙의 원점이나 집안 신앙의 으뜸하루를 돌이켜보고, 심기일전하여 완전히 바꾸어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이며, 소중한 마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우리 집안의 신앙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 집안의 신앙의 으뜸하루

우리 집안의 신앙의 으뜸하루를 살펴보면, 할머니의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이지(明治) 시대가 끝날 무렵, 할머니 무라카미 요시는 고령의 부인 포교사를 만났다. 그 포교사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자녀가 귀여운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당신의 힘으로 진실로 자녀를 지킬 수 있을까요. 자녀에게 좋은 운명을 주고 싶거든, 재산을 모으지 말고 낮은 마음, 순직한 마음으로 덕을 쌓으세요.”

남편과 생이별하여 양말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던 할머니는, 포교사의 말에 깊이 생각나는 바가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교토의 마이즈루(舞鶴)에 있는 선교소 현 ‘산카이(山海)분교회’에 입주하였다. 메이지 말부터 다이쇼(大正) 초기에 걸친 무렵이었다.

신앙에 용솟음친 할머니는 매일 구제에 전념하였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버지 히데오(英雄)는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해 강에 떠내려 오고 있는 야채부스러기를 건져서 먹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생활상의 어려움도 그렇지만, 당시 천리교에 대한 세상의 극심한 멸시와 냉대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는 그 후 나카야마 쇼젠(中山正善) 2대 신바시라(眞柱)의 부름에 따라 터전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2대 신바시라(眞柱)의 어버이마음에 따라 진학의 길이 열려 동경제국대학(현 도쿄대학) 이학부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깊은 고뇌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졸업 후 이 길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자연지리학(自然地理學)을 전공하였는데, 자신이 배운 학문이 이 길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심 학문의 길에 뜻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무렵 할머니로부터 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가 날아왔다. 좀 어설프게 더듬거리며 써내려간 문장이었지만, 인간으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상세하게 적은 글이었다. 아버지는 마음 깊숙한 데서 따뜻한 윤기를 느꼈다고 한다. ‘갈증나는 목에 달콤한 유방의 감촉을 느꼈다. 어릴 때 피부로 느꼈던 어머니의 애정을 새삼 느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을 되찾게 하면서 쓰러져 가던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었다’고 훗날 술회하였다.

이리하여 어버지는 天理敎敎會本部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사회에 나가 아무리 출세를 하더라도 나는 즐겁지 않아. 그보다 본부에서 이 길의 일을 해 주는 쪽이 얼마나 효도를 하는 것인지 몰라. 비록 일생동안 신자들의 신발을 정리해 주더라도, 그쪽이 훨씬 감사한 일이야. 이런 일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반드시 알 날이 오게 된다”고.

이후 아버지는 5년간 터전에서 어버이신님의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어머니 지에(智惠)와는 1934년에 결혼, 이듬해 12월 26일, 내가 장남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다섯 자녀를 두었으며, 본부에서 학교관계의 일을 하였다.

터전(註:인간창조의 본향/天理敎敎會本部)의 공기를 마시면서 자라다

터전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 형제들은 天理유치원에서 天理고교까지 터전의 공기를 마시면서 자랐다. 할머니는 언제나 포교 구제에 열심이셨다. 세상의 할머니들처럼 용돈이나 과자를 주신 적이 없었으므로, 우리 손자들에게는 좋은 할머니라는 인상은 그다지 없다. 그러나 언제나 “너희들에게는 아무것도 사 주지 않았지만, 하늘에 저금을 해 두었단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우리 형제들은 수학여행도 갈 수 없었다. 할머니는 그 비용을 신님께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는“이렇게 하늘에 저금을 해 두면, 수학여행은 아무것도 아니야. 언젠가는 어버이신님의 일로 온 세상을 돌아다니게 되는 거야”라고 우리들을 위로하셨다.

해외여행 같은 것은 꿈과 같이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할머니의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신기함에 나는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약 10년간에 걸친 연구생활을 비롯하여, 학회의 발표 등의 일로, 지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내가 연구자로서 활동하는 모든 것을 ‘어버이신님의 일’로 생각하게 된 것은 할머니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가르침 덕분이다.

잊을 수 없는 2대 신바시라(眞柱)의 말씀

어떻든 터전에서 보낸 18년간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큰 토대가 되었다. 天理학원에서 배운 신조교육을 통하여 신앙의 소양을 키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가운데서도 2대 신바시라(眞柱)로부터 받은 어버이마음 넘치는 훈도(薰陶)는 나 자신의 생애의 지침으로서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2대 신바시라(眞柱)는 우리들 이치레쓰회 부육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따뜻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것은 이 길의 젊은이에게 꿈을 키워주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였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말씀이 있다. 1953년 5월 26일, 2대 신바시라(眞柱)는 이치레쓰회 신규 부육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제군들은 장래 훌륭한 포교자, 훌륭한 후계자, 부모님들이 바라는 사람으로 자라나 주기를 바라는 한편, 좀더 나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고난 덕과 천분(天分)을 충분히 인지하여,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더욱 뻗어나가기 바란다.”

“사람의 꽃은 붉다.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제한된 세상에서는 통하겠지만, 넓은 세상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지가 않다.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라. 제군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德을 즐겁게 뻗어나가게 하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제군들의 생활도 밝아지게 되고, 세상도 차츰 밝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상론이라고 비평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 신앙자가 나아가야 할 발자취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眞柱 훈화집에서)

게다가 이치레쓰회 창립 25주년(1983년 10월 18일)에 있었던 말씀에서는

“敎會長 이외의 직업을 갖는 것이 이치레쓰회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타고난 자신의 덕을 살려나가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 바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의 정신, 즉 오야사마께서 베풀어주신 그 덕을 키워나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인생을 즐겁게 보낸다고 하는 이 길의 정신에 따라, 서로 힘이 되고 서로 돕고 위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세상의 일원이 되었을 때, 필시 세상은 밝아지게 될 것이다. 수호를 받게 될 것이다. 즐거운 삶의 날이 틀림없이 오게 될 것이다.” (眞柱훈화집에서)고 술회하시고 있다.

나의 가족은 한때 신바시라(眞柱)사택 부근에서 산 적이 있다. 2대 신바시라(眞柱)는 사택에서 나오셔서 자주 나를 부르신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 후에도 연구활동을 통하여 2대 신바시라(眞柱)로부터 무형 유형으로 어버이마음 넘치는 격려를 느낀 적이 있었다. 우리 연구실이 고혈압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효소 유전자 암호의 해독을 위해 세계의 강호들과 경쟁을 겨룬 끝에 역전 만루홈런과 같은 일이 일어나, 간발의 차이로 세계 최초의 업적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논문을 세계의 유력지에 게재할 때, 생각지도 못한 협력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토대학 명예교수인 기하라 히토시(木原均) 선생이었다.

그때는 기하라 선생이 왜 우리들에게 각별한 배려를 해 주셨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훗날 기하라 선생은 2대 신바시라(眞柱)로부터 많은 신세를 진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대 신바시라(眞柱)의 어버이마음은 아직껏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의 훌륭함을 역설하는 교토대학 총장

天理고교 3학년생이 되어 교토대학을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최초의 노벨 수상자인 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 박사가 계시는 대학에서 배우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학부를 지원한 이유는 입학하기 어려운 교토대학 가운데 비교적 들어가기 쉬운 학부라는 점도 있었지만, 2대 신바시라(眞柱)의 농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지원하여 운 좋게도 합격을 하였다. 그때 나는 나의 능력 이상의 무엇인가가 활동해 주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이 감각은 그 후에도 너무나 과분한 공적을 쌓을 때마다 나의 온 몸을 휘감곤 하였다.

교토에서의 대학생활은 하나의 전기(轉機)가 되었다. 터전 생활밖에 몰랐던 내게는 눈에 비치는 것 모두가 신선하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1학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일깨워 학문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 분이 있다. 마음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히라사와 코우(平澤興) 선생이었다. 히라사와 선생은 당시 교토대학 총장을 역임한 일본의 석학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분이 天理 만가지상담소 이코이노이에의 설립에 깊이 관여한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히라사와 선생은 교토대학의 이 길의 자녀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天理敎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이러한 선생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히라사와 선생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선생은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였고,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만남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지금 과학자로서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히라사와 선생의 덕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은사가 내가 처음 출판한 ‘인간·신앙·과학’(1986년, 도유샤 발행)에 서문을 적어 주셨다.

‘천리교의 교조 나카야마 미키님은, 인간의 몸은 어버이신님께서 빌려 주신 借物이라고 하시며, ‘인간의 몸은 대물·차물(貸物借物)’이라고 가르치셨는데, 이것만큼 간단하고도 의미 깊으며 위대한 말이 있을까.’

‘즐거운 삶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삶의 방식이며, 이것만큼 신기한 진리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은 달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히라사와 선생과 대담한 ‘생명의 신비’(1987년, 도유샤 발행) 가운데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다.

“오야사마께서 말씀하신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 이것은 일본의 장래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시입니다.……마음속에 이 말씀을 되새겨보면, 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을 받습니다.”

이 길에 깊은 이해를 갖고는 있었지만, 히라사와 선생은 교외자였다. 그러나 나보다 휠씬 깊게 이 길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계셨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내게는 오야사마의 말씀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떨릴 정도로 감동을 느낄 정도의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2대 신바시라(眞柱)의 어버이마음 넘치는 훈도와 은사이신 히라사와 선생의 인도, 할머니와 부모님의 진실한 이바지는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격려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받은 많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미력하나마 이 길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
天理敎道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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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닮은 우주적인 원리를 내포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게 했는지 생각할 수록 신기하기만 한 황홀한 세계에 살려지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격스러울 일이지 않습니까?!